조선시대에도 여드름이 있었을까? 의사가 찾아본 여드름 치료의 역사

사람의 피지선과 모낭이 조선시대라고 달랐을 리는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했던 건 단순히
“옛날 사람들도 여드름이 났을까?”
가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이걸 뭐라고 불렀을까?


왜 생긴다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대체 뭘 발랐을까?

기록을 찾아보니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조선시대의 여드름, ‘분자(粉刺)’

한국전통지식포털에는 분자(粉刺)라는 병증이 현대의 여드름에 대응되는 병증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기록을 읽어보면 묘사가 꽤 구체적입니다.

피부에 좁쌀 같은 병변이 생기고,
검은 꼭지가 솟기도 하며,
심하면 붉게 붓고 아프고,
짜서 터뜨리면 하얗고 끈끈한 내용물이 나오는 모습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대 피부과 의사의 눈으로 읽으면 개방면포와 폐쇄면포, 그리고 염증성 여드름 병변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는 표현들입니다.

특히 ‘검은 꼭지’라는 표현을 보면

“400년 전에도 이런 병변을 이렇게 관찰했구나.”

싶어지는 부분입니다.

물론 당시의 분자라는 개념을 현대의 acne vulgaris와 완전히 동일한 질환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당시 의학은 질병의 원인을 설명하는 체계 자체가 지금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여드름이 왜 생긴다고 생각했을까?

전통 의학 기록에서는 분자를 폐와 위에 열이 뭉쳐 얼굴로 올라오는 현상, 혹은 혈에 열이 머무르는 현상 등으로 설명했습니다.

또 지나치게 좋은 맛과 진한 맛의 음식을 먹는 것과도 연결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 피지 분비
  • 모낭의 비정상적인 각화
  • Cutibacterium acnes (C. acnes, 흔히 ‘여드름균’이라고 부르는 균)
  • 면역과 염증 반응

같은 개념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이 차이가 재미있었습니다.

질병이 왜 생기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지만, 눈앞에 나타난 피부 병변의 모양과 차이는 생각보다 세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인을 설명하는 언어는 달랐지만, 피부를 보고 “이 병변과 저 병변은 조금 다르다”는 사실 자체는 오래전부터 관찰하고 있었던 겁니다.

현미경도, 세균학도 없던 시대였지만 피부를 보는 눈까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의학의 역사를 볼 때 이런 부분이 특히 흥미롭습니다.

현대 의학은 질병의 기전과 원인을 훨씬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 출발점에는 결국 수백 년 전 사람들도 똑같이 했던 ‘관찰’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관찰한 피부 병변을 실제로 어떻게 치료했을까요?


조선시대에는 여드름을 어떻게 치료했을까?

분자와 관련된 동의보감 처방을 찾아보면 조금 의외의 재료가 등장합니다.

바로 유황입니다.

한국전통지식포털에 수록된 처방 중에는 유황고(硫黃膏)가 있습니다.

동의보감 외형편에 기록된 이 처방에는 실제로 유황(sulfur)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 약재를 가루로 만든 뒤 참기름과 황랍을 이용해 크림처럼 만들고, 세안 후 얼굴에 바르는 방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현대 기준으로 그대로 피부에 사용해서는 안 되는 성분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동의보감 처방을 지금 여드름에 그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수많은 재료 가운데, 왜 하필 유황이었을까요?


서양에서도 여드름에 유황을 썼다

여드름 치료의 역사를 찾아보면 유황은 동아시아에만 등장하지 않습니다.

고대의 여드름 치료를 다룬 서양 의학사 문헌에서도 꿀과 유황 같은 재료가 등장하고, 이후 서양의 여드름 치료 역사에서도 sulfur는 반복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 논문을 공유할 수도 없던 시대에 서로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비슷한 피부 문제에 유황을 사용한 셈입니다.

제가 이걸 처음 찾아봤을 때 가장 재미있었던 포인트 중 하나였습니다.

서로 카톡한 것도 아닌데 동서양이 둘 다 유황을 발견한 겁니다.

물론 과거의 사용법과 현대의 sulfur 제제를 같은 치료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서로 다른 시대와 지역의 사람들이 피부를 관찰하면서 비슷한 물질을 반복적으로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는 꽤 흥미롭습니다.

‘Acne’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이름의 역사도 재미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여드름과 비슷한 병변을 사춘기와 연결해서 표현했습니다.

특히 ionthoi라는 표현은 수염이 처음 자라기 시작하는 시기와 관련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의학사 문헌에서 설명합니다.

즉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이 피부 문제가 사춘기 무렵에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관찰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Acne vulgaris라는 표현은 1840년 Fuchs가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vulgaris라는 단어도 재미있습니다.

영어의 vulgar를 떠올리면 ‘저속하다’거나 ‘천박하다’는 뜻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의학명에서 vulgariscommon, 즉 ‘흔한 형태’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Acne vulgaris는 쉽게 말하면 ‘흔히 볼 수 있는 여드름’에 가까운 이름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현대 의학은 여드름을 어떻게 이해할까?

수백 년 동안 여드름은 존재했지만 우리가 여드름을 설명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현재 acne vulgaris모피지선 단위(pilosebaceous unit)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만성 염증성 피부질환으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몇 가지 중요한 요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첫째, 피지입니다.

안드로겐의 영향을 받는 피지선의 활동과 피지 분비 및 조성의 변화는 여드름의 병태생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피지가 많아서 여드름이 난다”라고 설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둘째, 모낭의 비정상적인 각화입니다.

모낭 안에서 각질세포가 정상적으로 배출되지 않고 축적되면 미세면포가 형성되고, 이것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개방면포나 폐쇄면포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셋째, C. acnes입니다.

흔히 ‘여드름균’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이 균이 많아지면 여드름이 생긴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C. acnes는 여드름 환자에게만 존재하는 세균이 아니라 정상 피부에도 존재하는 균입니다.

그래서 현재는 단순히 균의 양만으로 설명하기보다 C. acnes의 균주와 균형, 피부 미생물 환경, 그리고 이에 대한 면역반응 등을 함께 살펴보고 있습니다.

넷째, 염증입니다.

예전에는 모공이 먼저 막히고, 그다음 세균이 증식하면서 염증성 여드름이 생긴다고 비교적 단순하게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눈으로 붉은 여드름이 보이기 전, 미세면포를 포함한 비교적 초기 단계부터 염증과 면역반응이 관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결국 여드름은 피지, 모낭 각화, 미생물, 면역과 염증 중 하나만의 문제라기보다 여러 요소가 서로 영향을 주면서 만들어지는 질환입니다.


여드름은 그대로인데, 인간의 설명이 바뀌었다

조선시대에는 폐와 위의 열을 이야기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사춘기와 수염이 자라는 시기를 관찰했습니다.

19세기가 되면서 지금과 비슷한 질병명이 자리 잡았고, 현대의 피부과 의사는 피지, 모낭 각화, 미생물군, 면역과 염증을 연구합니다.

그런데 수백 년 전 기록에 등장하는 피부 병변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놀랄 만큼 익숙합니다.

그래서 여드름의 역사를 찾아보다가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드름은 수천 년 동안 계속 있었지만,
여드름을 설명하는 인간의 이야기는 계속 바뀌어왔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50년 뒤의 피부과 의사는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여드름에 대한 설명이나 치료 중 일부를 보면서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구나.”

라고 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자료

  1. 한국전통지식포털 — 분자(粉刺)
  2. 한국전통지식포털 — 유황고(硫黃膏)
  3. The age-old problem of acne
  4. Acne treatment in antiquity: can approaches from the past be relevant in the future?
  5. Association of different cell types and inflammation in early acne vulgaris
  6. The Skin Microbiome: A New Actor in Inflammatory Acne

Dr. Sangkyung

서울에서 미용의학을 진료하는 의사입니다.
피부와 미용의학,
의학과 피부치료의 역사,
그리고 아름다움에 관한 문화와 과학을 이야기합니다.

Through a doctor's eyes.


© 2026 Dr. Sangkyung.

본문의 일부를 인용하거나 공유할 경우 Dr. Sangkyung 및 원문 링크(www.drsangkyung.com)를 출처로 표시해 주세요.

본문 및 자체 제작 이미지·도표의 무단 전체 복제 및 재배포는 허용하지 않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